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순간, 많은 분들이 곧바로 소송보다는 합의를 먼저 선택합니다. 상간자(相姦者)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진행하던 중 합의에 이르면서 이른바 ‘상간 합의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합의서를 작성하고 나서 상간자가 다시 배우자를 만나거나 연락을 이어가도 위약금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합의서에 서명·날인까지 받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이 글에서는 실제 판례를 통해 상간 합의서의 법적 효력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리고 실무상 어떻게 작성해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지를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상간 합의서란 무엇인가?
상간 합의서는 배우자와 부정행위를 저지른 제3자(상간자)가 피해 배우자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위자료)을 지급하고, 향후 추가적인 접촉을 하지 않겠다고 엄숙히 약속하는 계약서입니다. 법적으로는 민법상 ‘화해계약’ 또는 ‘약정’의 성격을 가집니다. 일반적으로 합의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유기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위자료 지급 조항: 과거 발생한 부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액 및 지급 기한 확정
접촉금지 조항: 향후 만남, 전화, 문자, SNS 등 일체의 사적 소통 금지
위약벌·위약금 조항: 접촉금지 약속 위반 시 제재
부제소합의 조항: 합의금 수령 후 소 취하 및 본 건과 관련된 추가 소송이나 민·형사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
비밀유지 조항: 합의 사실 및 외도 사실을 제3자나 인터넷 등에 폭로하지 않을 의무
이 중 실무상 분쟁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접촉금지 조항의 해석’과 ‘위약금 및 위약벌의 효력’입니다.
2. “만남 금지”만 기재하면 충분한가? — 법원의 문언 해석 태도
많은 분들이 합의서에 “이후 C(배우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한 줄만 적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생각보다 엄격하고 복잡하게 해석합니다.
대법원은 “처분문서의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기재된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하나, 당사자 사이에 법률행위의 해석을 둘러싸고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법률행위가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합의서에 단순히 “만남 금지”라고 적혀 있더라도, 실제 분쟁에서는 그 범위를 두고 양 당사자가 다툴 여지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춘천지방법원 2021. 9. 2. 선고 2021나30256 판결입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가 합의서 작성 이후 자신의 배우자를 2회 만나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5회 발송하였다는 이유로 위약벌 2,000만 원을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합의서에서 금지된 ‘연락과 만나는 행위’는 “피고의 자발적 의사로서 배우자와 부정한 관계를 지속할 목적으로 행하여진 만남 내지 연락을 의미한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합의서가 접근을 시도한 쪽과 접근을 받은 쪽을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었고, 피고는 단순히 관계를 종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만났을 뿐 부정행위 지속 의사가 없었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례는 “만남 금지”라는 단순 문구만으로는 법원이 위약금 지급 의무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합의서에 ‘부정한 관계를 지속할 목적’이라는 제한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면, 위반행위가 존재하더라도 부정한 관계 지속 목적의 입증을 못할 경우 청구가 기각될 수 있습니다.
3. 100% 승소하는 ‘접촉금지 조항’ 작성법 (성공 판례 분석)
앞서 본 2021나30256 판결의 문제는 합의서에 ‘부정행위 지속 목적’이라는 해석 여지가 남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성공적으로 위약금을 인정받은 사례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① 예외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극도로 제한할 것
상간자가 배우자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등 어쩔 수 없이 대면해야 하는 관계라면, 허용되는 한계를 칼로 자르듯 명시해야 합니다.
② 공적 연락 주장 차단 및 위반 금액 인용 사례
상간자가 나중에 “업무상 긴급한 연락이었다”고 억지 부리는 것을 완전히 봉쇄한 판례도 있습니다.
③ 다양한 연락 수단의 구체적 명시와 누적 인정
단순히 “만남 금지”가 아니라 전화·문자·카카오톡·SNS 다이렉트 메시지·이메일 등 연락 수단을 모두 열거하고, “직접·간접을 불문하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금지한다”는 조항까지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위약금인가, 위약벌인가 — 반드시 알아야 할 구별
상간 합의서에서 가장 중요한 법적 쟁점 중 하나는 합의서에 기재된 금액이 위약금(손해배상액의 예정) 인지 위약벌인지의 구별입니다. 왜냐하면 그에 따라 법원이 금액을 감액할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398조 제4항은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위약금(손해배상액 예정)으로 인정되면 법원은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라 금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감액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약벌로 인정되면 원칙적으로 감액 규정이 유추적용되지 않고, 오직 공서양속 위반으로 무효가 되는 경우에만 전부 또는 일부가 효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약정한 위약벌에 대하여 법원이 함부로 개입하는 것은 사적 자치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 될 수 있으므로 가급적 자제하여야 한다” 태도를 보입니다(대법원 2024. 11. 28. 선고 2024다266069 판결).
따라서 합의서 작성 시에는 접촉금지조항에 기재되는 금액을 위약벌로 명확히 구성하는 것이 피해 배우자에게 유리합니다. 위약벌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①해당 금액이 손해 전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무 이행 강제를 위한 제재임을 합의서 문언에서 명확히 해야 하고, ②별도로 손해배상액의 예정 조항을 두어 두 조항이 상호 독립적으로 적용됨을 밝히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3. 12. 선고 2023가단5287673 판결은 이러한 이중구조 합의서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 사건에서 합의서 제6항은 ‘위약벌 1억 원’으로, 제8항은 ‘위약금 1억 원(합의 의무위반에 대한 벌칙)’으로 각각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법원은 제6항을 실질적으로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제8항을 위약벌로 각각 달리 판단하였습니다(명칭과 실질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법원이 실질에 따라 재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입니다.). 결국 위약금에 해당하는 제6항의 1억원에 대해서는 과다하다고 보아 2,000만 원으로 감액하였으나, 위약벌에 해당하는 제8항의 1억 원은 그대로 인정하여 총 1억 2,000만 원을 인용하였습니다.
5. 위약벌 금액은 얼마로 적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그렇다면 무조건 위약벌을 수억 원씩 높게 적으면 좋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법원은 위약벌의 성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당사자의 우월적 지위 남용이거나 사회질서에 현저히 반할 만큼 과도할 경우에는 공서양속 위반을 이유로 조항 전체를 무효로 만들거나 일부를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설시한 기준에 따르면, 위약벌의 공서양속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①당사자의 지위(독점적·우월적 지위 남용 여부), ②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③위약벌 약정의 동기와 경위, ④계약 위반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며, 단순히 위약벌 액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무효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대법원 2024. 11. 28. 선고 2024다266069 판결).
실무상 추천 설계 구조: 실무상으로는 1회 위반 시 1,000만 원~3,000만 원 수준에서 시작하여 위반 횟수가 누적될수록 가산되는 구조를 취하거나, 접촉금지 의무 위반(연락)과 만남을 별개로 구분하여 만남에 더 높은 위약벌을 설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6. 변호사가 알려주는 실무상 합의 진행 팁 2가지
① 상대방에게도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권유하십시오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하면 나에게 불리할 것 같지만 법리적으로는 정반대입니다.
대법원 판결을 보면 “원고와 피고 모두 법률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자의로 합의에 이르렀으므로 당사자 일방이 독점적이거나 우월한 지위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위약벌 무효 주장을 배척하였습니다(대법원 2024. 11. 28. 선고 2024다266069 판결).
② 합의서 작성 경위를 기록으로 남기십시오
협의 과정에서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 이메일 등이 나중에 합의서 해석의 근거가 됩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5. 10. 24. 선고 2024나29958 판결은 피고가 합의서 초안 논의 당시 ‘2번 항목은 위약벌조항은 괜찮으나’라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합의서 해석의 주요한 근거 중 하나로 활용되었습니다
③ ‘공증’을 반드시 병행하여 강제집행력을 확보하십시오
합의서만 들고 있으면 상대방이 나중에 위약벌 지급을 거부할 때 다시 지루한 이행청구 소송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공증을 받으면 집행력 확보가 쉬워집니다. 즉, 합의서 자체로는 강제집행이 어렵지만, 금전지급 의무를 담은 공정증서를 작성하면 별도 소송 없이 상대방의 재산을 압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마치며: 합의서는 전쟁 후의 계약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설계
상간 합의서는 단순히 ‘이전의 부정행위에 대한 마무리’가 아닙니다. 향후 부정행위 재발을 방지하고, 만약 재발하더라도 신속하게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 미래 지향적 문서입니다. 법원도 최근 들어 사적 자치의 원칙을 존중하며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정한 위약벌을 가급적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례 흐름이 강화되고 있습니다(대법원 2024다266069,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가단5287673).
그러나 아무리 강한 위약벌 조항을 두더라도 문언이 불명확하거나 해석 여지를 남겨두면 법원이 ‘부정행위 지속 목적’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할 수 있습니다(춘천지방법원 2021나30256 참조). 반면 접촉의 대상·수단·예외 범위를 명확히 기재하고, 위약벌의 성격을 합의서 문면에서 분명히 하며, 체결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두면 위반 시 확실한 법적 제재를 담보할 수 있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2024나29958, 수원지방법원안산지원 2024가단98747,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2023가단85976).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극심한 상황에서 합의서를 혼자 작성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반드시 가족법 분야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함께 합의서 조항을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